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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癸酉) [성덕왕 31년]

【당 현종 개원 21년 ○ 일황 성무 10년 ○ 서력 기원 733년】이었다.

왕이 김윤중(金允中)을 보내 발해국(渤海國)을 정벌토록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이고 고구려(高句麗)의 다른 종족이다. 고구려가 이미 멸망하였는데, 대조영(大祚榮)이 스스로의 힘으로 진국왕(震國王)이 되었다. 이에 앞서 당(唐)나라 무후(武后) 때에 걸걸중상(乞乞仲象)이 말갈 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고구려 유민과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서 태백산(太白山) 동북쪽 오루하(奧婁河)를 차지하였다. 이에 무후가 걸걸중상을 봉하여 진국공(震國公)으로 삼았는데, 걸걸중상이 죽고 그의 아들 대조영이 스스로 일어나서 왕이 되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원년(713)에 책립(冊立)하여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삼았다. 이에 북부여(北扶餘), 옥저(沃沮) 등의 땅을 모두 차지하고 왕이 된 지 12년에 대조영이 당나라의 봉작(封爵)을 받아서 발해의 국경을 개척하였다. 이때에 이르러서 대조영이 죽고 그의 아들 무예(武藝)가 즉위하여 더욱 그 영토를 개척하여 넓히고 당나라의 등주(登州)를 정벌하였다. 이에 당나라 황제가 신라(新羅) 왕에게 격문을 전해 남쪽 지역을 공격하라고 하니, 왕이 김윤중 등 4명의 장수로 하여금 당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가서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때 모인 곳에 큰 눈이 내려서 산길이 험하여 막히고 병사의 절반 이상이 죽었으므로 병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발해 왕 대조영이 개국한 이래로 6명의 왕이 왕업을 이어 갔으며, 선왕(宣王) 야발(野勃)이 즉위하니, 즉 대조영의 아우이고 나이가 70세였다. 제생(諸生)을 당나라에 보내 고금의 제도를 배워 익히고 그 땅에 5경(京), 15부(府), 62주(州)를 설치하였다. 숙신(肅愼)의 옛 땅으로 상경(上京)을 삼으니, 이곳이 곧 용정부(龍井府)이고, 대조영의 수책처(樹柵處)이다. 백두산(白頭山) 동남쪽 동모산(東牟山) 아래에 있다. 그 남쪽은 중경(中京)이니 현덕부(顯德府)이고, 예맥(濊貊)1)원문에는 예맥(穢貊)으로 되어 있으나, 예맥(濊貊)으로 바로잡는다.의 옛 땅은 동경(東京)이니 용원부(龍原府)이다. 옥저의 옛 땅은 남경(南京)이니 남해부(南海府)이다. 고구려의 옛 땅은 서경(西京)이니 압록부(鴨綠府)이다. 부가 각 주를 다스려서 신라와 함께 패강(浿江)과 철령(鐵嶺)으로써 영토의 경계로 정하여 해동(海東)의 성국(盛國)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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