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문종 개성 4년 ○ 일황 인명 6년 ○ 서력 기원 839년】이었다.
봄 정월에 김양(金陽)이 병사를 보내어 김명(金明)을 토벌하니, 김명이 도망하였다. 김양이 추격하여 목을 베고 곧 명령을 내리기를, “나의 본뜻은 복수를 하고자 한 것으로 지금 그 괴수[渠魁]가 죽음을 당하였으니 백성은 각기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도록 하라.”고 하니 인심이 크게 기뻐하였다.
○ 여름 4월에 김양이 김우징(金祐徵)을 맞이하여 즉위시키니, 왕이 장보고(張保皐)1)원문에는 장보부(張保阜)로 되어 있으나, 장보고(張保皐)로 바로잡는다.를 감의군사(感義軍使)에 임명하고 식읍(食邑) 2천 호를 봉(封)하였다.
○ 가을 7월에 왕이 돌아가시고 태자 경응(慶膺)이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