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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辛巳) [헌안왕 4년]

【당 의종(懿宗) 함통(咸通) 2년 ○ 일황 청화(淸和) 3년 ○ 서력 기원 861년】이었다.

정월에 왕이 병환으로 누워서 좌우에게 부탁하여 말하기를, “과인이 불행히도 아들은 없고 딸만 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옛적에 비록 진덕과 선덕 두 여왕이 계셨으나, 이는 옳은 법도가 아니다. 지금 사위 응렴(膺廉)이 비록 나이가 어리나 성숙한 덕이 있으니 경 등은 받들어 왕위에 올리도록 하라. 반드시 조종(祖宗)의 업(業)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니 과인이 죽어서라도 영원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돌아가시고 응렴이 즉위하였다. 이에 앞서 왕족 계명(啓明)의 아들 응렴이 임해전(臨海殿)에서 왕을 모시고 연회를 열었다. 그때 그의 나이 15세였다. 왕이 그의 기량과 식견을 시험하기 위해서 물어 말하기를, “자네가 배우러 다닌 지 오래되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보았는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3명을 보았으니, 하나는 공훈이 있는 문벌 자제이면서 타인에게 겸손하여 스스로를 낮추고, 하나는 집이 부유한데도 입은 옷이 사치스럽지 않고, 하나는 세력이 왕성한데도 교만한 기운이 없으니, 이들이 좋은 사람이라 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왕후를 바라보며 말하기를, “짐이 겪어 온 사람이 많았지만 응렴과 같은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고 장녀와 혼인시키니 그가 영화 부인(寧花夫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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