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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乙卯) [진성왕 8년]

【후백제 견훤 4년 ○ 당 소종 건령(乾寧) 2년 ○ 일황 우다 8년 ○ 서력 기원 895년】이었다.

가을 8월에 궁예(弓裔)가 한주(漢州)와 철원(鐵圓)【지금의 철원(鐵原)】 등 10여 군을 격파하고 송악군(松嶽郡)1)원문에는 송악군(松岳郡)으로 되어 있으나, 송악군(松嶽郡)으로 바로잡는다.에 도읍하였다가 다시 철원으로 천도(遷都)하고 국호를 태봉(泰封)이라고 하였다. 궁예가 항상 전(前) 왕에게 버림받은 것을 원망하여 그의 초상화[畵像]를 보고는 칼로 찢어 버렸다.

○ 궁예가 왕건(王建)을 철원 태수(鐵圓太守)로 삼았다. 왕건은 한주 송악군 사람이다. 처음에 부친 융(隆)이 한씨(韓氏)를 아내로 삼고 송악산(松岳山) 남쪽에 집을 지으니, 승려 도선(道詵)이 와서 보고 말하기를, “이곳은 성인(聖人)이 나올 땅이니 내년에 공이 귀한 아들을 반드시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한이 되니 과연 왕건이 태어났다. 얼굴[龍顔]이 귀인의 상[日角]이고 기품과 도량이 웅대하고 깊으며,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 세상을 구할 만한 큰 뜻이 있었다. 나이가 17세에 도선이 다시 이르러 청하여 보고 말하기를, “그대[足下]가 사나운 운수가 모이는 때[百六의 會]를 만나니 삼국의 백성이 공이 널리 구제해 주기를 기다린다.”고 하고 군사를 내어 진을 치는 방법과 천시(天時), 지리(地利)의 법을 전수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궁예에게 가서 의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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