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견훤 22년 ○ 태봉 궁예 13년 ○ 후량 말제(末帝)도 거듭 건화(乾化) 3년으로 칭함 ○ 일황 제호 16년 ○ 서력 기원 913년】이었다.
궁예(弓裔)가 왕건(王建)이 변경에서의 공이 여러 차례 드러났다고 하여 시중(侍中)에 임명하였다. 이에 왕건의 지위가 신하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큰일을 모두 스스로 결정하였으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외직을 요청하였는데, 궁예가 다시 왕건을 백선 장군(百船將軍)에 임명하여 수군을 통솔하고 나주(羅州)를 지키라고 하였다. 이에 견훤(甄萱)과 해상의 여러 도적이 모두 두려워하여 엎드려 움직이지 못하였다.
○ 궁예가 그의 처 강씨(康氏)를 죽였다. 강씨가 궁예의 무도함을 보고 수 차례 간언하였는데 궁예가 답을 하지 않고 다만 말하기를, “당신이 다른 사람과 간통한 것은 어찌할 것인가. 내가 미륵불(彌勒佛)의 관심법(觀心法)으로 당신의 행동을 볼 수 있다.”고 하고 뜨거운 불로 쇠 방망이를 벌겋게 달구어서 때려 죽이고, 아울러 두 아이까지 죽였다. 또 그 아랫사람들을 무고하게 얽어서 수백 명을 날마다 죽였으니, 장수와 재상 가운데 해를 입은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었다(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