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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인(戊寅) [경명왕 원년]

무인(戊寅) [경명왕 원년]

【후백제 견훤 27년 ○ 태봉 궁예 18년 이 해에 죽음 ○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 ○ 후량 말제 정명 4년 ○ 일황 제호 21년 ○ 서력 기원 918년】이었다.

여름 6월 병진(丙辰)에 태봉(泰封)의 여러 장수가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아 국호는 고려라 하고, 연호를 정하여 ‘천수(天授)’라고 하였다. 궁예(弓裔)는 피하여 도망가다가 죽으니, 태봉이 망하였다. 이에 앞서 장군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1)원문에는 배현경(裴玄慶)으로 되어 있으나, 배현경(裵玄慶)으로 바로잡는다.,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등이 왕건의 집에 이르러서 왕건에게 말하기를, “지금 왕의 포학함이 날로 심하니 걸왕(桀王)과 주왕(紂王)의 악함이라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개 사리에 어긋난 왕을 몰아내고 사리에 밝은 왕을 세우는 것[廢昏立明]은 천하의 큰 뜻이니, 청컨대 공께서는 은(殷)나라와 주(周)나라의 고사(古事)를 행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왕건이 얼굴색이 바뀌며 말하기를, “내가 충의(忠義)로써 스스로 허락하였는데 왕이 비록 난폭하기는 하나 어찌 두 마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때를 만나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습니다. 하늘이 부여한 것을 취하지 않으면 그 재앙을 도리어 받을 것이니 어찌 천명을 거역하고, 포악한 군주[獨夫]에게 죽음을 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왕건이 오히려 힘써 거절하니 그의 부인 유씨(柳氏)가 장막 속에서 몰래 듣다가 나와서 왕건에게 말하기를, “의(義)를 들어 포학한 군주를 죽이는 것은 예부터 모두 그러했습니다. 지금 여러 장수의 말을 들으니 소첩도 오히려 힘이 떨쳐 일어나는데 하물며 대장부께서는 어떻겠습니까?” 하고 직접 갑옷을 가져다가 왕건에게 입혔다. 이에 여러 장수가 왕건을 호위하고 나아가 군신의 예를 행하고, 사람을 시켜 말을 타고 달리며 말하기를, “왕 공(公)이 이미 의로운 깃발을 들었다.”고 하니 백성이 이를 듣고 먼저 궁 안에 이르러 북을 치고 떠들면서 왕건을 기다린 자들이 이미 1만여 명이었다. 드디어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하니 궁예가 변란 소식을 듣고 놀라서 말하기를, “왕 공이 천하를 얻었으니 나의 일은 끝났다.”라고 하고, 수수한 옷차림으로 북문을 나가 바위 골짜기 사이에서 이틀 밤을 지샜다. 굶주림이 심하여 보리 이삭을 잘라서 먹다가 마침내 부양(斧壤)【지금의 평강(平康)】의 백성에게 해를 당하였다.

○ 고려가 비로소 관제를 정함에 조서를 내리기를, “예전에 태봉 왕이 신라(新羅)의 관직과 군읍(郡邑)의 명칭을 많이 고쳤으나 지금 그 편리하고 쉬운 것을 참작하여 시행하라.”고 하였다.

○ 가을 7월에 고려 왕이 또한 조서를 내리기를, “태봉 왕이 그 욕심을 좇아서 오직 취렴(聚斂)을 일삼고 1경(頃)의 밭에서 6석(碩)의 조세를 거두어서 백성이 농사와 길쌈을 버리고 유망함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백성의 부모 된 본뜻이겠는가. 지금으로부터 천하에서 통용되는 법에 따라 항례(恒例)를 정하라.”고 하였다.

○ 고려 왕이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할 때에 홍유 등 2천여 명에게 각기 금은과 비단, 미곡을 하사하였다.

○ 견훤(甄萱)이 일길찬(一吉飡)과 민합(閔郃)을 고려에 보내서 즉위를 축하하니, 왕이 후한 예로 대하였다.

○ 고려의 웅주(熊州)【지금의 공주(公州)】와 운주(運州)【지금의 홍주(洪州)】 등 10여 주현(州縣)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백제(後百濟)에게 항복하였다. 이에 고려 왕이 김행도(金行濤)를 동남 초토사(東南招討使)로 임명하여 방비토록 하였다.

○ 고려 왕이 송악(松嶽)2)원문에는 송악(松岳)으로 되어 있으나, 송악(松嶽)으로 바로잡는다.으로 도읍을 옮기고 철원(鐵圓)을 동주(東州)라고 하니 곧 지금의 철원군(鐵原郡)이다.

○ 견훤이 오(吳), 월(越)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 11월에 고려 유사(有司)가 왕에게 아뢰기를, “전(前) 왕 때에 매년 11월에 팔관회(八關會)를 크게 열어서 복을 기원하였으니, 청컨대 그 제도를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에 법왕(法王)과 왕륜(王輪) 등 10개의 사찰을 도성 안에 새롭게 세우고 팔관회를 거듭해서 열었다. 팔관은 즉 팔계(八戒)이다. 죽이지 말 것, 도적질하지 말 것, 음란하고 방탕하지 말 것, 거짓말을 하지 말 것3)원문에는 망어(忘語)로 되어 있으나, 잊다(忘)가 아니라 속이다(妄)의 의미이므로 망어(妄語)로 바로잡는다., 술을 마시지 말 것, 높고 큰 의자에 앉지 말 것, 향이나 꽃으로 꾸미지 말 것, 스스로 노래하거나 보거나 듣지 말 것이다. 관(關)이란 곧 막고 금지한다는 뜻이니, 여덟 가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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