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후백제(後百濟)가 망했다 ○ 후진(後晋) 고조(高祖) 천복(天福) 원년 ○ 일황 주작 6년 ○ 서력 기원 936년】이었다.
가을 9월에 신검(神劍)이 항복하고 후백제가 망했다. 이에 앞서 견훤(甄萱)이 왕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대왕의 위엄으로 적자(賊子)를 죽이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그 말을 가엾게 생각하여 곧 군사를 보내 직접 토벌하였다. 신검이 귀순하여 죄를 빌었으므로 왕이 그 간신을 죽이고 신검을 특별히 사면하니, 견훤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종기가 나서 죽었다.
○ 왕이 후백제에서 회군하여 위봉루(威鳳樓)에 가서 문무백관(文武百官)과 백성의 조하(朝賀)를 받고 『정계(政誡)』를 지어서 안팎에 널리 펴서 알렸다.
○ 겨울 12월에 대광(大匡) 배현경(裵玄慶)1)원문에는 배현경(裴玄慶)으로 되어 있으나, 배현경(裵玄慶)으로 바로잡는다.이 죽었다. 배현경은 경주(慶州) 사람으로 담력이 남보다 뛰어나고, 병사 가운데 출세하여 전공(戰功)이 많았다.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시호를 무열(武烈)이라고 하였다.
○ 정승(政丞) 김부(金傅)가 옥대를 헌납하니 길이가 10위(圍)이고 쇠 장식[銙]이 62개이니, 곧 신라(新羅) 진평왕(眞平王)이 차던 것이다. 세상 사람이 ‘성대(聖帶)’라고 칭하였다(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