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고조 천복 8년 ○ 일황 주작 13년 ○ 서력 기원 943년】이었다.
5월에 왕이 병에 걸리자 학사들에게 명하여 유언으로 남길 조서[遺詔]를 쓰도록 하였다. 글이 완성되자 다시 말을 하지 못하니 좌우가 말을 잃은 채 크게 울부짖었다.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덧없는 인생이 예부터 모두 그러하다.”라고 말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태자 무(武)가 즉위하고 시호를 신성(神聖), 묘호를 태조(太祖)라 하였다. 현릉(顯陵)에 안장하고 유언에 따라 장례 절차와 원릉(園陵) 제도는 모두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고사(古事)에 의거해서 검약을 따르도록 하니, 이후로부터 왕이 돌아가시면 27일에 장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