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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술(庚戌) [현종 원년]

경술(庚戌) [현종 원년]

【송 진종 대중상부 3년 ○ 일황 일조 24년 ○ 서력 기원 1010년】이었다.

가을 7월에 거란[契丹] 왕이 사신을 파견하여 전(前) 왕의 일을 문책[詰問]하고,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직접 이끌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서 격문을 전달했다. 그 격문에 이르기를, “지금 고려(高麗)의 역신(逆臣) 강조(康兆)가 임금을 살해하고 어린 왕을 옹립하였으니, 짐이 군사를 일으켜 그 죄를 묻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강조가 나아가 방어하기 위해 통주(通州)【지금의 선천(宣川)】에 이르러서 강을 마주하고 진을 쳤는데, 거란군이 삼수암(三水巖)으로 진격하여 격파하였다. 이때에 강조가 병사의 강함을 믿고 한가로이 앉아서 바둑을 두다가 거란군이 갑자기 들이닥쳤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일어나는데, 정신이 없어 멍한 사이에 목종(穆宗)이 크게 꾸짖으며 말하기를, “네 이놈 멈추거라. 천벌을 어찌 피하여 도망가느냐?”라고 하였다. 강조가 이내 투구를 벗고 공손히 꿇어앉아 절을 하며 말하기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말이 채 끝나지 않았을 때 거란군에게 포박되어 거란 진영으로 끌려가서 참수되었다.

○ 12월에 거란이 개경[京都]을 침범하니 군신들이 항복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때 예부 시랑(禮部侍郞) 강감찬(姜邯贊)이 홀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죄가 강조 한 사람에게 있으며 다른 근심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을 대적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니 마땅히 그 예봉을 잠시 피하여 다시 일어나기를 천천히 도모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고 왕에게 남쪽으로 행차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왕이 후비(后妃)와 채충순(蔡忠順) 등을 데리고 도성 문을 나가서 나주(羅州)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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