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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辛亥) [현종 2년]

【송 진종 대중상부 4년 ○ 일황 일조 25년 ○ 서력 기원 1011년】이었다.

봄 정월에 거란[契丹] 왕이 개경[京城]을 함락시키고 물러났다. 이에 왕이 전주(全州)에서 돌아와 하공진(河拱辰)을 거란 진영에 보내 군사를 이끌고 돌아갈 것을 청하였는데, 거란 왕이 그를 붙잡아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때에 귀주 별장(龜州別將) 김숙흥(金叔興)이 거란을 기다렸다가 맞받아쳐 크게 물리쳐서 1만여 급의 목을 베고, 순검사(巡檢使) 양규(楊規)도 또한 거란군 4천 5백여 명을 죽이고, 포로로 잡혀 있던 남녀 3만 명을 되찾아 생환시켰다. 얼마 있다가 거란 왕의 대군이 몰래 이르러 양규와 김숙흥이 종일토록 고전하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두 사람은 이미 죽었으나, 여러 장수가 거란군이 지쳐 있는 틈을 타서 뒤에서 공격하여 쳐부수니, 거란 왕이 급히 도망하여 압록강(鴨綠江)을 건너갔다. 이때 진사(鎭使) 정성(鄭成)이 반 정도 건너가고 있던 그들의 후미를 공격하니 거란군의 상당수가 물에 빠져 죽고, 함락되었던 여러 성을 수복하였다.

○ 중대성(中臺省)을 없애고 중추원(中樞院)을 설치하였다.

○ 왕이 개경[京都]으로 돌아와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였다. 영빈관(迎賓館)과 회선관(會仙館)을 두고 여러 나라의 사신을 접대하도록 하였다.

○ 거란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맺었다.

○ 겨울 12월에 거란 왕이 하공진을 죽였다. 하공진이 억류당해 있을 적에 거란 왕이 예로써 대하는 것이 매우 두터웠으므로 하공진이 겉으로는 충성하는 척하면서, 고려(高麗)로 돌아가고자 하여 좋은 말을 많이 사들이고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그 모의가 발각되어 거란 왕이 국문(鞫問)하였다. 하공진이 사실대로 실토하고 또한 말하기를, “신이 본국에 두 마음이 없으니 돌아가기를 원합니다.”라고 하니 거란 왕이 그 의로움에 감동하여 석방하고 또한 그 절개를 바꾸기를 강하게 타일렀다. 그러나 하공진이 더욱 그 뜻을 굽히지 않고 말이 더욱 격렬해져서 마침내 죽음을 당하였다.

○ 거란 왕이 사신을 보내, 흥화(興化)【지금은 의주(義州)에 속해 있고 또한 은산(殷山)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통주(通州)【지금의 선천(宣川)】, 용주(龍州)【지금의 용천(龍川)】, 철주(鐵州)【지금의 철산(鐵山)】, 곽주(郭州)【지금의 곽산(郭山)】, 귀주(龜州)【지금의 귀성(龜城)】 등 6성을 요구하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1012).

○ 여진(女眞)이 거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려고 하자 대장군(大將軍) 김승위(金承渭)가 격퇴하였다(1013).

○ 거란이 6성을 연이어 요구하다가 국구(國舅) 상온(詳穩) 소적렬(蕭敵烈)이 통주를 침략하였는데 흥화진 장군(興化鎭將軍) 정신용(鄭神勇)1)원문에는 정신통(鄭神通)으로 되어 있으나, 정신용(鄭神勇)으로 바로잡는다.이 맞서 싸워서 7백여 급의 머리를 베니 거란군이 물러났다(1014).

○ 상장군(上將軍) 김훈(金訓), 최질(崔質) 등이 반란을 일으켜서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와 일직(日直) 황보유의(皇甫兪義)를 유배 보냈다. 몇 년 전에 군사를 부린 이후부터 병력 수를 늘려서 군량의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이로 인해 관료의 녹봉(祿俸)이 부족해지자 황보유의 등이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빼앗아 녹봉으로 충당하므로 무관들이 큰 불만을 가졌다. 이때에 이르러 최질이 변방에서의 공이 있었는데, 정부가 다만 무관직에 거듭 임명할 뿐 문관직은 허락하지 않았다. 최질이 더욱 불만을 갖게 되어 이에 김훈 등과 함께 여러 호위 병사를 거느리고 궁궐로 들어가서 황보유의 등을 힘껏 매질하고 또한 왕의 면전에서 호소하여 죄를 물을 것을 청하였다. 왕이 어쩔 수 없이 황보유의 등을 먼 곳으로 유배 보내고 또한 김훈 등의 말을 따라 문관직의 어사대(御史臺)와 삼사(三司)를 없애고, 금오대(金吾臺)와 도정서(都正署)를 설치하여 무관들로 하여금 겸직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해에 왕이 왕가도(王可道)의 계책을 이용해서 김훈과 최질 등을 처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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