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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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丁酉) [문종 11년]

정유(丁酉) [문종 11년]

【송 인종 가우(嘉祐) 2년 ○ 일황 후냉천 12년 ○ 서력 기원 1057년】이었다.

가을 8월에 경정상(慶鼎相)을 한림(翰林)에 임명하였는데, 중서성(中書省)이 언급하기를 “경정상은 대장장이[鐵匠]의 후손이라 청요직(淸要職)은 분수에 넘치니 청컨대 관직을 삭탈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왕이 말하기를, “옛말에 이르길 ‘순무와 무를 캐는 것은 그 뿌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쓰임이 가능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경정상의 재주와 식견이 쓰일 만한 것이 있으니 어찌 그 집안의 내력을 논하겠는가?”라고 하고 그 청을 윤허하지 않았다.

○ 개경과 서경[兩京], 그리고 동주(東州)【지금의 철원(鐵原)】의 여러 군에 명령하여 한 집안에 3명의 아들이 있는 자는 그 가운데 한 명에게 허락하여 승려가 되도록 하였다(1059).

○ 왕이 봉은사(奉恩寺)에 행차하였다가 국자감(國子監)에 이르러서 곁의 신하에게 일러 말하기를, “공자[仲尼]는 백성의 스승이니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두 번 절을 하였다(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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