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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 [예종 10년]

【송 휘종 정화 5년 ○ 일황 조우 8년 ○ 서력 기원 1115년】이었다.

봄에 여진(女眞) 완안(完顔) 아골타(阿骨打)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금(金)이라고 하였다. 8월에 요(遼)가 장차 토벌하고자 사신을 보내 병사를 요청하거늘, 왕이 척준경(拓俊京)과 김부식(金富軾)의 말을 듣고 거절하였다.

○ 왕이 서경(西京)에 행차하여 대동강(大同江)에서 배를 띄우고 여러 신하와 함께 시를 지으니, 지제고(知制誥) 최약(崔瀹)이 말하되, “제왕은 마땅히 경술(經術)을 좋아하여 좋은 도(道)를 자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독수리가 벌레 따위를 잡는 작은 기예를 일삼아서 참된 진리를 잃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관대히 받아들였다. 이때 글을 짓던 한 신하가 헐뜯으며 말하기를, “최약이 시 짓는 재주가 짧은 까닭에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화를 내며 최약을 파직하고 쫓아냈다. 이후에 그의 시 짓는 재능을 듣고는 다시 불러들였는데, 최약은 최유선(崔惟善)의 손자이다.

○ 곽여(郭輿)는 금주(金州)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기에 힘쓰고 예부(禮部)에서 잠시 벼슬을 하다가 이때에 이르러 고향에 돌아가 은둔하였다. 이에 왕이 불러서 술과 음식을 직접 내리며 선생(先生)이라 칭하였다. 검은 두건[烏巾]을 쓰고 학창의(鶴氅衣)를 입은 자가 좌우에서 항상 시중을 들게 하니, 당시 사람들이 ‘금문우객(金門羽客)’이라고 하였다.

○ 금나라가 사신을 보내 우호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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