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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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사(癸巳) [명종 3년]

계사(癸巳) [명종 3년]

【송 효종 건도 9년 ○ 일황 고창 5년 ○ 서력 기원 1173년】이었다.

가을 8월에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이 녹사(錄事) 장순석(張純錫) 등과 함께 병사를 일으켜 정중부(鄭仲夫)와 이의방(李義方)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장순석 등이 거제(巨濟)에 이르러서 전(前)왕을 받들고 경주(慶州)로 나아가서 머물렀는데, 이때 동북면 지병마사(東北面知兵馬使) 한언국(韓彦國)이 또한 서로 호응하여 병사를 일으켰다가 정중부 등에게 패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또한 김보당도 체포되어 이의방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김보당이 죽음에 이르러 말하기를, “이번 일에 문신이라면 누군들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이의방이 정중부와 함께 문신들을 처형하여 강물에 던지니, 열흘 동안 문신들 거의 대부분이 없어졌다. 낭장(郎將) 김부(金富)가 정중부 등에게 말하기를, “하늘의 뜻을 알 수가 없고 인심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힘만을 믿고 의리를 저버리고 문관[衣冠]을 모두 없앤다면 세상에 어찌 김보당과 같은 자가 또한 없겠습니까. 우리들의 자식을 문신과 혼인시켜 그 마음을 안정케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정중부 등이 그 말을 좇으니, 이로부터 화(禍)가 점차 멈추게 되었다.

○ 겨울 10월에 정중부 등이 이의민(李義旼)으로 하여금 전왕을 경주에서 시해하도록 하였다. 이의민은 경주 사람인데 힘이 매우 장사이고 무장 가운데 더욱 흉악하고 잔인하였다. 이때에 이르러서 경주로 가서 전왕을 곤원사(坤元寺) 북쪽 연못 위로 끌고 가서는 손으로 왕의 등뼈를 부러뜨려서 죽이고, 요로 시신을 싸서 두 개의 도끼를 매달아서 연못에 던졌다. 후에 호장(戶長) 필인(弼仁) 등이 관(棺)을 갖추어서 물가에 안장하였다. 이의민은 그 공을 인정받아 대장군(大將軍)으로 특별히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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