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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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己亥) [명종 9년]

【송 효종 순희 6년 ○ 일황 고창 11년 ○ 서력 기원 1179년】이었다.

장군 경대승(慶大升)이 정중부(鄭仲夫)와 송유인(宋有仁) 등을 죽였다. 이에 앞서 정중부가 나이 70이니, 옛 의례에 따르면 마땅히 벼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이에 예관(禮官)을 슬며시 빗대어 깨우치게 했는데, 한(漢)나라 공광(孔光)의 고사(古事)를 아뢰어서 궤(几)와 지팡이를 하사하고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국사는 모두 정중부가 관여하여 결정하였으며, 그의 사위 송유인 등은 세력을 믿고 탐욕이 지나쳐서 안팎으로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하였다. 그의 아들 정균(鄭筠)이 공주에게 장가들고자 하였으므로 왕이 매우 근심하였다. 이때에 경대승이 정중부 등에게 분개하고 원한이 있었으나 송유인 등을 두려워하여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송유인이 문극렴(文克謙)과 한문준(韓文俊)을 배척하여 파직하자 인심이 들끓었으므로 경대승이 견룡(牽龍)【관직명】 허승(許升)으로 하여금 정균을 죽이도록 하였다. 그리고 경대승은 죽기를 각오한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 담을 넘어 들어가 지유(指諭) 문공려(文公呂) 등을 죽이고 드디어 왕명으로 정중부와 송유인 등을 참수하였다. 얼마 후에 무신들의 원망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므로 경대승이 두려워하여 장사(壯士) 1백여 명을 문하에 두고 양성하면서 돌아가며 숙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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