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4(고려기(高麗紀))
  • 명종(明宗)
  • 계묘(癸卯) [명종 13년]

계묘(癸卯) [명종 13년]

【송 효종 순희 10년 ○ 일황 안덕(安德) 3년 ○ 서력 기원 1183년】이었다.

가을 7월에 경대승(慶大升)이 죽었다. 경대승이 정중부(鄭仲夫) 등을 참수한 후로 항상 두려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을을 사찰하여 떠도는 소문이 있으면 곧바로 사람을 잡아 가두어 국문하였는데, 형벌이 지나치게 엄하였다. 또 왕이 총애하였으므로 따르는 자가 많았으나 학식과 용력이 없는 자는 거절하였다. 이 때문에 무관들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가 겨우 30세였다.

○ 겨울 11월에 태후 임씨(任氏)가 돌아가셨다. 태후가 병들어 누워 있을 적에 왕이 직접 약을 달이고 밤에도 옷을 벗지 않은 것이 여러 날이었다. 병이 위중해지자 왕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고 태후가 돌아가신 후에는 밤낮으로 통곡하니 그 애통함이 매우 심하였다. 재상들이 슬픔을 절제할 것을 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 겨울 12월에 정윤당(鄭允當)을 이부 원외랑(吏部員外郞)으로 삼았다. 정윤당이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었지만 그의 부친 정세우(鄭世祐)가 세금을 많이 걷어서 왕에게 바치고 그 관직을 얻었다. 이때에 왕이 사람을 쓰는 법이, 오직 가깝고 친한 사람과 함께 정사를 의논하고 참관(參官) 이상은 이조[政曹]에 분부하여 봉하니 이를 ‘하점(下點)’이라고 하였다. 이로 인해 분경(奔競)의 풍조가 성행하여 뇌물을 받는 것이 공공연히 행해졌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