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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甲子) [신종 7년]

【송 영종 가태 4년 ○ 일황 토어문1)원문에는 어토문(御土門)으로 되어 있으나, 토어문으로 바로잡는다. 6년 ○ 서력 기원 1204년】이었다.

봄 정월에 왕이 편치 않아 태자 영(韺)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덕양후(德陽侯) 사저에 옮겨 머물다가 얼마 후에 돌아가셨다. 시호는 정효(靖孝)이고 묘호는 신종(神宗)이며, 양릉(陽陵)에 장사 지냈다. 이에 앞서 왕이 편치 않아서 최충헌(崔忠獻)에게 내선(內禪)2)왕이 생전에 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을 말한다.할 뜻을 말하니 최충헌이 태자에게 알렸다. 태자가 눈물을 흘리며 완강히 사양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태자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최충헌이 태자를 옹립하고 대관전(大觀殿)에 나아가서 여러 관료의 축하를 받았다. 이때에 왕이 최충헌을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오늘날 짐의 뜻하는 바가 이루어졌다. 짐의 부자에게 바친 경의 공덕이 결코 적지 않다.”고 하였다.

○ 겨울 12월에 최충헌을 태사(太師) 문하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하였다. 왕이 최충헌이 옹립한 공이 있다고 하여 특별한 예로 대우하고 이르기를 ‘은문상국(恩門相國)’이라고 하였다.

○ 한유한(韓惟漢)은 개경[京都] 사람으로 최충헌이 국정을 멋대로 하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장차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고 처자식을 데리고 지리산에 은거하며 바깥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 벼슬을 제수하여도 나아가지 않았으며, 또 깊은 계곡으로 옮겨 살면서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거란[契丹]과 몽고(蒙古)와의 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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