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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癸巳) [고종 20년]

【송 이종 소정 6년 ○ 일황 사조(四條) 원년 ○ 서력 기원 1233년】이었다.

5월에 서경(西京) 사람 필현보(畢賢甫)와 홍복원(洪福源) 등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 정기(鄭覬)를 선유사(宣諭使)로 삼아 가서 타이르게 하였다. 정기가 대동강(大同江)에 이르니, 적의 형세가 매우 강성했으므로 따르던 자가 성급히 들어가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정기가 분연히 말하기를, “내가 어찌 왕명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 드디어 들어갔다. 필현보 등이 정기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그가 굴복하지 않음을 한탄하고 죽였다. 겨울 12월에 최우(崔瑀)가 사병 3천 명을 내어 북계 병마사(北界兵馬使) 민희(閔曦)와 함께 가서 토벌하여 필현보의 목을 베니, 홍복원은 몽고(蒙古)로 도망을 갔다. 이에 앞서 살리타[撒禮塔]가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홍복원이 나아가 항복하여 그의 심복이 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서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 또한 몽고에 호응한 것이다. 홍복원이 몽고에 있으면서 동경(東京)【지금의 요동(遼東)에 있다.】 총관(摠管)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거짓으로 참소하였으니 몽고의 물자 요구와 침략이 모두 홍복원이 유도한 것이었다.

○ 강화(江華) 도성에 외성을 쌓았다.

○ 김취려(金就礪)가 죽었다. 김취려는 언양(彦陽) 사람으로 사람됨이 절제 있고 검소하며, 정직하였다. 충의(忠義)를 스스로 지키며 군대를 지휘하는 것이 매우 엄격하고 완벽하여 사졸들이 감히 규율을 어기지 못하였다. 술이 있으면 곧 병사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마시고, 진용을 갖추어 적을 제압할 때에는 기묘한 계책을 많이 내어서 큰 공을 세웠다.

○ 최우에게 천도한 공을 인정하여 진양후(晉陽侯)에 봉하고 부(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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