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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戊申) [고종 35년]

【송 이종 순화 8년 ○ 일황 후심초(後深草) 2년 ○ 서력 기원후 1248년】이라.

봄 3월이었다. 이때에 몽고군이 북쪽 경계를 넘어와서 수달을 잡는다고 칭하고는 가는 곳마다 약탈하였다. 이에 병마사(兵馬使)에게 명하여 백성을 섬으로 이주토록 하였다. 그런데 안북부(安北府)【지금의 안주(安州)】의 위도(葦島)는 바닷물이 드나들어서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병마 판관(兵馬判官) 김방경(金方慶)이 백성들로 하여금 제방[堤堰]을 쌓게 하고 피를 심도록 하였다. 백성이 처음에는 고통스러워 원망하였으나 가을이 되어 많은 곡식을 수확하였다. 이때에 몽고군이 비록 여러 해 동안 물러나지 않았으나 섬의 백성들은 굶지 않았다. 또 섬 안에 우물이 없었는데 김방경이 큰 연못을 파서 물을 저장하였다가 여름에는 끌어다 쓰고 겨울에는 얼음을 깨서 쓰니, 백성이 비로소 그 지혜에 감복하였다.

○ 최항(崔沆)을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에 임명하였다. 최항은 최우의 아들이니 그의 아우와 함께 승려가 되었는데 이름을 ‘만전(萬全)’이라 하였다. 무뢰한 문도(門徒)들을 모아서 재물 늘리는 것을 일삼아 금과 비단이 몇 만이 될 정도로 많았고, 쌓아 놓은 쌀이 50여 만 석에 이르렀다. 백성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아서 주⋅읍(州邑)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때에 이르러서 최우가 만전에게 환속하도록 하여 이름을 고치도록 하고 이 직을 제수하였다. 처음에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 김지대(金之岱)가 만전의 문도를 잡아서 여러 가지 죄를 따져 묻고 강에 던지니 만전이 크게 원한을 품었으나, 김지대가 청렴하고 매사에 조심하여 과실이 없었으므로 최항이 해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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