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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戊午) [고종 45년]

【송 이종 보우 6년 ○ 일황 후심초 12년 ○ 서력 기원 1258년】이었다.

여름 4월에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과 별장(別將) 김인준(金仁俊) 등이 최의(崔竩)를 죽였다. 최의가 참언을 믿어서 남을 경계하는 마음이 많았으며, 부정한 재물을 싫어하지 않았으니 이로 인해서 인망을 잃었다. 이때에 김인준은 최충헌(崔忠獻)의 가노였다. 용모가 기골이 장대하고 컸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베풀기를 좋아하여 최우(崔瑀)와 최항(崔沆)이 모두 총애하고 믿었다. 유경은 정방(政房)에 오래 동안 있으면서 최항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최의가 집정하면서부터 모두 소원해지니 두 사람이 불평하였다. 또 송길유(宋吉儒)는 김인준, 유경의 무리로서 탐욕이 많고 포악함이 심했으므로 최의가 송길유를 추자도(楸子島)로 유배 보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이 더욱 미워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낭장(郎將) 박송비(朴松庇), 박희실(朴希實), 이연소(李延紹), 이공주(李公柱), 임연(林衍), 김인준의 동생 김승준(金承俊) 등과 함께 몰래 계책을 세워서 최의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때에 별초(別抄) 3대(隊)를 사청(射廳)에 모이게 하고 추밀사(樞密使) 최온(崔昷)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병사를 이끌고 최의의 집에 들이닥치니, 최의가 옥구(屋冓)1)여자들이 거처하는 지역을 말한다.로 도망가서 숨었다. 그를 찾아서 목을 베고 그 무리를 모두 죽였으며, 정사를 왕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벽에 있는 최충헌과 최우의 초상화를 모두 없앨 것을 청하니, 왕이 이를 따랐다. 유경을 추밀원 우부승선(樞密院右副承宣)으로 삼고, 박송비와 김인준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았으며 위사공신(衛社功臣)의 칭호를 내렸다. 그 나머지에게도 차등을 두어 관직을 내리고 최의의 집 창고를 열어서 중외의 관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 겨울 11월에 유경을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로 삼았다. 유경이 최의를 죽인 후 정방을 편전(便殿)에 두도록 아뢰어 인사 추천을 오로지 맡아서 하니, 김인준이 매우 공경하고 중히 여겨 매사에 자문을 구하였다. 그러나 김인준의 동생 김승준은 스스로 공은 높으나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여 원망을 품고 임연 등과 함께 유경을 김인준에게 중상모략하여 승선 직을 파하고 이 직위를 제수하였다. 이는 정권을 빼앗은 것이며 이로부터 내외의 권력이 모두 김인준에게 돌아갔다.

○ 한양(漢陽) 용진(龍津) 사람 조휘(趙暉)가 정주(定州) 사람 탁청(卓靑)과 함께 몽고군을 이끌고 저도(猪島)【지금의 영흥(永興)에 있다.】에 들어와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 신집평(愼執平)을 죽이고 화주(和州)【지금의 영흥】 이북 지역을 가지고 몽고(蒙古)에 항복하였다. 몽고가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화주에 설치하고 조휘를 총관(摠管)에 임명하였으며, 탁청을 천호(千戶)로 삼았다. 조휘 등이 수시로 출몰하여 약탈하였으며 이로부터 나라는 동북 지방의 여러 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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