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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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辛未) [원종 12년]

【송 도종 함순 7년 ○ 일황 귀산 12년 ○ 서력 기원 1271년】이었다.

여름 5월에 김방경(金方慶) 등이 진도(珍島)를 대파하였다. 이에 앞서 몽고(蒙古) 황제는 “아해(阿海)가 겁을 먹고 위축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하면서 흔도(忻都)와 홍다구(洪茶丘)로 하여금 병사를 지휘하여 서로 돕도록 하였다. 이에 김방경이 흔도 및 홍다구와 함께 좌⋅우군을 나누어 거느리고 적을 벽파정(碧波亭)【진도 남강(南江)】에서 크게 물리치고 가짜 왕 온(溫)의 목을 베니 나머지 무리가 탐라(耽羅)로 도망쳐 들어갔다.

○ 12월에 몽고 다루가치[達魯花赤] 탈타아(脫朶兒)가 죽었다. 탈타아는 매우 침착하고 신중하며 덕이 있어서 백성을 어루만지며 보살폈으며, 결단이 분명하여 법을 잘못 적용하는 일이 없었다. 병이 있어 국의(國醫)가 약을 지어 올리니 탈타아가 사양하여 물리치며 말하기를, “내가 만일 이것을 마시고 죽으면 귀국을 헐뜯는 자가 반드시 ‘고려(高麗)가 독살하였다’고 말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시지 않고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한탄하고 안타까워했다.

○ 김방경을 수태위 중서 문하평장사(守太尉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하였다.

○ 겨울 10월에 몽고가 국호를 세워 '대원(大元)'이라 하고, 사신을 보내 통보하므로 왕도 사신을 보내 축하하였다.

○ 태부(太府)에 재물이 고갈되자 부관(府官) 강위찬(姜渭贊)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도망을 갔다. 이때에 왕실의 창고 또한 텅 비어서 왕에게 올리는 음식이 하루 저녁을 걸렀다.

○ 처음 홍문계(洪文系)가 임유무(林惟茂)를 죽인 공로로 승선(承宣)에 임명되었다가 나랏일이 날이 갈수록 잘못되는 것을 보고 사직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추밀 부사(樞密府事)에 다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나이가 40세가 되지 않았다.

○ 삼별초(三別抄) 도적들이 탐라(耽羅)에 들어가서 내⋅외성을 쌓고 자주 밖으로 나와 약탈하자 왕이 김방경을 원수로 삼고 군사 1만여 명을 이끌고 흔도, 홍다구 등과 함께 나아가 토벌하게 하여 이겼다. 도적의 우두머리 김통정(金通精)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나머지 무리가 모두 항복하였다. 김방경을 높여서 시중(侍中)에 임명하였다.

○ 원나라가 사신을 보내 남쪽 지방에서 금을 채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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