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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甲戌) [원종 15년]

【송 도종 함순 10년 ○ 일황 귀산 15년 ○ 서력 기원 1274년】이었다.

여름 6월에 왕이 돌아가셨다. 이때에 세자(世子)【당시에 원(元)나라가 태자 칭호를 힐책하여, 이후로는 세자라 칭하였다.】가 원나라에 있었으므로, 백관이 태자를 멀리서 높여 왕으로 삼았다. 전왕의 시호를 순효(順孝)라 하고 묘호는 원종(元宗)으로 하였다. 가을 8월에 세자가 귀국하여 즉위하고 소릉(韶陵)에 장사 지냈다.

○ 겨울 10월에 김방경(金方慶) 등이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에 앞서 원나라 황제가 일본(日本)을 항복시키고자 할 때에 우리나라가 일본과 우호적으로 통교하였다고 하여, 사신 흑적(黑的) 등을 보내 우리 사신과 함께 일본에 가서 내조(來朝)하기를 권하라 하였다. 일본이 이를 따르지 않자 원나라 황제가 노하여 정벌하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에 사신을 보내 전함을 건조할 것을 독촉하고, 이때에 이르러 군사 2만 5천 명을 내어 홀돈(忽敦)과 홍다구(洪茶丘)로 하여금 거느리고 오게 하였다. 왕이 김방경과 박지량(朴之亮), 김흔(金忻) 등을 보내서 도와 싸우도록 하였다. 쓰시마 섬[對馬島]에서부터 이키 섬[壹岐島]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싸워 모두 승리하고 1천여 급의 목을 베었다. 삼랑포(三郞浦)에 상륙하여 길을 나눠 군사를 나아가도록 하였는데 일본군이 갑자기 이르렀다. 김방경이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으며 큰 소리로 꾸짖으니 일본군이 기세에 눌려 뒷걸음치며 물러났다. 김흔과 박지량 등이 또한 힘을 다해 싸워서 크게 물리치니 엎어진 시체가 삼[麻]과 같았다. 몽고군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몽고군이 잘 싸운다고 하지만 어찌 이에 미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김방경이 다시 싸우고자 하니 홀돈이 그만두기를 권해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돌아오는데, 마침 큰 비바람이 일어나 전선이 많이 파손되고 병사들 가운데 물에 빠져 죽은 자가 1만여 명이나 되었다.

○ 이에 앞서 왕이 원나라에 머물면서 원나라 황제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홀도노게미실 공주(忽都魯揭迷失公主)’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서 공주가 왔는데, 왕이 맞이할 때에 따르는 신하들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따르도록 하였다. 12월에 숙주(肅州)【지금의 숙천(肅川)】에서 공주를 만나 오랑캐 옷을 입고 함께 가마를 타고 개경으로 들어왔다. 전 왕비 왕씨(王氏)의 직위를 낮춰서 정화궁주(貞和宮主)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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