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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甲辰) [충렬왕 30년]

【원 후종(後宗) 대덕 8년 ○ 일황 후이조(後二條) 3년 ○ 서력 기원1)원문에는 기원백(紀元百)으로 되어 있으나, 기원후로 바로잡는다. 1304년】이었다.

여름 5월에 국학교수(國學敎授)를 설치하였다. 처음에 찬성사(贊成事) 안유(安裕)【나중에 안향(安珦)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전쟁 이후 학교가 훼손되고 유풍(儒風)이 날로 쇠퇴하며 양현고(養賢庫)가 모두 고갈되어 학생을 가르칠 비용이 없다 하고, 양부(兩府)에 건의하여 6품 이상은 은 1근을 내놓고, 7품 이하는 베[布]를 내놓아 양현고에 귀속시키고, 이를 자본으로 삼아 이자를 취하도록 하였다. 왕이 왕실 창고의 전곡을 내어서 보조하니 안유가 국학을 수리하였다. 또 강남에 사람을 보내 옛 성인과 70제자의 초상화와 제기 및 악기, 6경과 제자백가와 역사서를 사 오게 하였다. 이산(李㦃)과 이진(李瑱) 등을 추천하여 경사교수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에 임명하고, 이성(李晟), 추적(秋適), 최원충(崔元沖) 등을 교수로 삼았다. 경전마다 교수 2명을 두어 금학(禁學)과 내시관(內侍官), 3도감(都監)과 5고(庫)의 선비, 7관(館)과 12도(徒)의 학생들로 하여금 따라서 듣고 배우게 하였다. 6월에 국학의 대성전(大成殿)이 완성되니, 왕이 옛 성인에게 참배하고 밀직사(密直司) 이혼(李混)에게 명하여 입학송(入學頌)을 짓게 해 학생들에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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