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문종 지순 2년 ○ 일황 후제호 13년 ○ 서력 기원 1331년1)원문에는 1430년으로 되어 있으나, 1331년으로 바로잡는다.】이었다.
여름 4월에 왕이 연복정(延福亭)에 행차하여 물놀이와 격구(擊毬)를 구경하였다. 왕이 음란하고 게으르며, 사냥을 좋아하여 사냥을 하지 않는 달이 없었다.
○ 가을 7월에 첨의중찬(僉議中贊) 대녕부원군(大寧府院君) 최유엄(崔有渰)이 죽었다. 최유엄은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사람됨이 조용하고 겸손하며 명예와 이익을 구하지 않았고 충직했기 때문에 죄를 받았다. 후에 크게 기용되어 네 조정에서 대대로 벼슬하고 나라의 원로(元老)가 되었다. 조야(朝野)의 신망을 받다가 죽으니, 나이가 93세이고, 시호는 충헌(忠憲)이라 하였다.
○ 8월이었다. 기내(畿內)에 전토를 지급하여 녹봉을 충당하는 과(科)를 폐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