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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乙未) [공민왕 4년]

【원 순제 지정 15년 ○ 일황 후촌상 17년 ○ 서력 기원 1355년】이었다.

겨울 12월에 우리 환조대왕(桓祖大王)이 쌍성(雙城)【지금의 영흥(永興)】으로부터 와서 왕을 알현하셨다.1)원문에서 본조(本朝)인 조선 왕조의 태조를 비롯한 그의 조상의 행적에 대한 표현은 모두 존칭으로 되어 있다. 이 번역문에서도 그 표현을 그대로 따랐다. 환조의 성은 이(李)씨이고 휘(諱)는 자춘(子春)이다. 몽고(蒙古) 이름은 오로사불화(吾魯思不花)이고, 계통은 전주(全州)이며, 신라(新羅)의 사공(司空) 휘는 한(翰)의 먼 후손이다. 3대조는 목조대왕(穆祖大王)이라 하니 휘는 안사(安社)이다. 전주에서 삼척(三陟)으로 옮겨 가 살았고, 또 삼척에서 의주(宜州)【지금의 덕원(德源)】로 이사하였다. 조정에서 의주 방어사(宜州防禦使)로 임명하고, 고원(高原)에 주둔하여 원(元)나라 사람을 막으라고 하였다. 그때 원나라 사람이 쌍성에 와 주둔하여 목조에게 협조하기를 청하니 목조가 부득이하여 몽고에 귀부하였다. 또 알동(斡東)【지금의 경흥(慶興) 지역】으로 이주하시니, 몽고가 남경(南京) 5천호소(五千戶所)의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임명하였는데, 그때가 고종(高宗) 41년이었다. 목조의 아들은 익조대왕(翼祖大王)이라 하니 휘는 행리(行里)이고, 원의 5천호소 다루가치에 세습하여 봉해졌다. 충렬왕(忠烈王) 때에 원나라가 일본(日本)을 정벌하자 익조가 원나라 황제의 명을 받아 충렬왕을 알현하였는데, 그때 물러나면서 말하기를, “선친[先臣]이 북쪽으로 간 것은 실상은 호랑이와 이리의 입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지 나라의 은혜를 배반한 것이 아니옵니다.”라고 하셨다. 충렬왕이 말하기를, “경은 근본을 잊지 않았다고 할 만하다.”고 하였다.

익조의 아들은 도조대왕(度祖大王)이라고 하니, 휘는 춘(椿)이다. 충숙왕(忠肅王) 때에 와서 왕을 만나 뵈셨다. 도조가 환조를 낳으시니, 환조는 말 타기와 활 쏘기를 잘하고 병졸이 잘 따랐는데, 이번에 또 왕을 만나 뵈셨다. 처음에 쌍성의 땅이 비옥하여 동남쪽 백성 가운데 귀부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조정에서 행성랑(行省郞) 이수산(李壽山)을 보내 원나라의 중서성(中書省)과 요양성(遼陽省) 관원과 함께 백성의 신구 호적을 구분하여 3성이라 칭하였다. 그 후 어루만져 편안하게 하는 일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자 점차 흩어져 떠나므로, 왕이 환조에게 명하여 그 일을 주관하도록 하니, 백성이 생업에 안정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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