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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戊戌) [공민왕 7년]

【원 순제 지정 18년 ○ 일황 후촌상 20년 ○ 서력 기원 1358년】이었다.

여름 5월에 방국진(方國珍)이 사신을 보내 내빙(來聘)하였다. 당시 방국진이 중원(中原)의 난을 틈타서 태주(台州)를 점거하였다.

○ 6월에 장사성(張士誠)이 사신을 보내 침향(沈香)과 수정(水晶), 옥대(玉帶) 등의 물건을 바쳤다. 당시 장사성은 항주(杭州)를 점거하고 스스로 태위(太尉)라고 칭하였다.

○ 가을 8월에 서강(西江)에 성을 쌓아 일본(日本)을 방어하였다.

○ 이씨(李氏)를 받아들여 혜비(惠妃)로 봉하였으니, 혜비는 이제현(李齊賢)의 딸이다.

○ 이때 홍건적(紅巾賊)이 일어나서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우두머리 관선생(關先生) 등은 원(元)나라의 상도(上都)【원나라의 옛 도읍으로 만리장성의 밖에 있다.】를 함락하였다. 또 압록강(鴨綠江)을 건너와 약탈과 도둑질을 하니, 경천흥(慶千興)을 서북면 원수(西北面元帥)에 임명하고, 안우(安祐)를 부원수(副元帥)에 임명하여 가서 토벌하도록 하였는데, 이때 적의 무리가 4만 명이었다. 적이 압록강을 건너서 의(義)【의주】, 정(靜)【지금의 의주에 있다.】 등 주(州)를 연이어 함락하였다. 다시 이암(李巖)을 서북면 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삼아서 경천흥과 안우, 그리고 최영(崔塋), 김득배(金得培), 이춘부(李春富) 등과 함께 방어하도록 하였다. 이암이 적을 두려워하여 진격하지 못하므로 이승경(李承慶)으로 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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