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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辛丑) [공민왕 10년]

【원 순제 지정 21년 ○ 일황 후촌상 23년 ○ 서력 기원 1361년】이었다.

봄 2월에 환조(桓祖)를 동북면 병마사(東北面兵馬使)에 임명하였다가 다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더하였다.

○ 우리 환조께서 돌아가시니 왕이 사신을 보내 조의를 표하고 부의를 내렸다. 사대부들이 모두 놀라며 탄식하기를, “동북면에 인물이 없다.”고 하였다.

○ 가을 9월에 독로강(禿魯江)【지금의 강계(江界)에 있다.】 만호(萬戶) 박의(朴儀)가 반란을 일으키니 우리 태조대왕(太祖大王)을 보내 잡아서 죽였다. 태조는 환조의 아들로 휘(諱)는 단(旦)이고, 자(字)는 군진(君晋)이며, 처음의 휘[初諱]는 성계(成桂)이고, 자는 중결(仲潔)이다. 충숙왕(忠肅王) 후 4년 을해(乙亥)에 영흥(永興) 흑석리(黑石里) 사저에서 태어나셨다. 코가 우뚝 솟고 용안(龍顔)에 용모가 매우 뛰어났다. 장성하시자 너그럽고 어질며 도량이 크고, 세상을 구하며 백성을 편안하게 할 재략이 있으셨다. 이에 앞서 이달충(李達衷)이 동북면 병마사가 되었다가 조정으로 돌아갈 때 환조가 환송연을 베풀었는데, 그때 태조께서 모시고 서 있다가 술을 올리셨다. 이달충이 공경하며 무릎을 꿇고 술을 마시므로 환조가 괴이하게 여겨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므로 공이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공의 가업을 이 사람이 크게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자신의 자손들을 부탁하였으니 이달충은 원래 사람을 알아보는 식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때에 이르러 태조는 금오위 상장군(金吾衛上將軍)으로서 동북면 상만호(東北面上萬戶)가 되셨다. 마침 박의가 난을 일으키자 태조께서 직접 병사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하니, 박의가 강계(江界)로 도망갔으나 태조께서 끝까지 쫓아가 모두 죽였다.

○ 겨울 10월에 홍건적(紅巾賊) 우두머리 반성사(潘誠沙)와 관선생(關先生) 등이 또 군사 수십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안주(安州)를 습격하니, 관군이 패하였다. 왕이 다시 평장사(平章事) 김용(金鏞)과 참지정사(參知政事) 정세운(鄭世雲) 등을 보내 절령(岊嶺)【지금의 서흥(瑞興)에 있으며, 일명 자비령(慈悲嶺)이라고 한다.】을 수비하게 했으나, 또 적의 습격을 당하여 군사가 크게 무너지고 수도가 크게 동요했다. 이에 왕이 태후를 모시고 남쪽으로 행차하니, 적이 곧 도성을 함락하였다. 12월에 왕이 복주(福州)【지금의 안동(安東)】에 이르러 정세운을 총병관(摠兵官)에 임명하여 여러 군대를 감독하고 인솔하여 홍건적을 물리치라고 하였다. 정세운이 명을 받들고 강개하면서 분한 마음이 북받쳐 적을 토벌하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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