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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癸卯) [공민왕 12년]

【원 순제 지정 23년 ○ 일황 후촌상 25년 ○ 서력 기원1)원문에는 기후원(紀後元)으로 되어 있으나, 기원후(紀元後)로 바로잡는다. 1363년】이었다.

2월에 왕이 도성으로 돌아왔다.

○ 윤 3월에 김용(金鏞)이 덕흥군(德興君)과 내통하여 왕을 해치고자 할 때 무리 50여 명을 몰래 보내 궁궐 문을 지키던 자의 목을 베고, 침전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환관 안도적(安都赤)의 용모가 왕과 비슷하므로, 왕을 대신하여2)원문에는 벌(伐)로 되어 있으나, 대(代)로 바로잡는다. 침상에 누워 있었다. 적이 왕인 줄 알고 죽인 후, 그 무리를 나누어 보내 우정승(右政丞) 홍언박(洪彦博) 등을 죽였다. 얼마 지난 후에 일이 실패하여 김용을 밀성군(密城郡)【지금의 밀양(密陽)】에 유배 보냈다가 다시 죽인 후에 그의 머리를 도성으로 가져왔다. 이때 왕은 오히려 김용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때 홍언박은 훈척(勳戚)으로서 상상(上相)이었으므로, 김용이 비록 권력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므로, 먼저 죽인 것이다. 홍언박은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어서 그가 죽자 당시 사람들이 한탄하며 애석해 하였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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