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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丙午) [공민왕 15년]

【원 순제 지정 26년 ○ 일황 후촌상 28년 ○ 서력 기원 1366년】이었다.

여름 4월에 사의대부(司議大夫) 정추(鄭樞)를 강등하여 동래 현령(東萊縣令)으로 삼고, 좌정언(左正言) 이존오(李存吾)는 장사(長沙)【지금의 무장군(茂長郡)】 감무(監務)로 삼았다. 이때 신돈(辛旽)이 국정을 맡아서 불법을 자행하였으나, 감히 그를 배척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존오가 분노하여 상소하고자 하면서 먼저 상소문을 동료들에게 보이며 말하기를, “요물이 나라를 잘못 끌고 가니 물리쳐 쫓아내지 않을 수 없다.”고 하니, 동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응하는 자가 없었다. 오직 정추만이 따라서 함께 상소하여 말하기를, “신 등이 엎드려 바라보니, 지난번 궁궐 안에서 신돈이 감히 전하와 함께 앉았으니, 무릇 예라는 것은 상하를 분별하고, 백성의 뜻을 명확히 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예가 없다면 어찌 군신과 부자와 국가가 있겠습니까? 지금 신돈이 임금의 은혜를 지나치게 받아서 국정을 제멋대로 하고 국왕을 무시하는 마음을 품고 왕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그가 집에 있을 때에는 재상이 마당에서 절을 합니다. 비록 최항(崔沆), 김인준(金仁俊), 임연(林衍) 등이라도 이와 같이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이자겸(李資謙)은 인종(仁宗)의 외할아버지였지만 공론(公論)을 두려워하여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사사로운 예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왕과 신하 간의 구분이 본디 정해져 있는 만고불변의 법이니 전하도 이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신돈이 현명하다 하여 크게 기용하셨으나, 신돈이 국정을 맡은 이후로 정령(政令)1)정치상의 법도와 규칙, 명령을 말한다.이 문란하여 백성들이 원망하고 탄식합니다. 신들이 간원(諫院)에 있으며 안타까운 것은 전하께서 장차 사방의 웃음거리가 되고 만세에 비난을 당할까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크게 노하여 상소문을 불태우고 이존오와 정추를 질책하였다. 이때 신돈이 왕과 함께 평상에 마주 앉아 있었으므로 이존오가 크게 꾸짖어 말하기를, “늙은 중의 무례함이 어찌 이와 같은가?” 하니 신돈이 당황하고 놀라서 곧 평상에서 떨어졌다. 왕이 더욱 노하여 이존오와 정추를 옥에 가두고 이춘부(李春富)와 김난(金蘭), 이색(李穡) 등에게 명하여 국문하게 하였다. 이춘부 등이 왕의 뜻을 받들어 이존오를 죽이고자 하나, 이색이 매번 구해 주어 단지 그 직책을 낮추도록 하였다. 이때 이존오의 나이가 25세였다.

○ 가을 7월에 문수회(文殊會)를 궁중에서 열었다. 이때 왕이 후사가 없었는데 신돈이 이 모임을 열어서 아들을 얻기를 빌라고 권했기 때문이다.

○ 5월에 전 첨의 시중(僉議侍中) 이공수(李公遂)가 죽었다. 이공수는 익주(益州) 사람이다. 성격이 순수하고 밝으며 삼가고 신중하여 터럭 하나라도 받고 주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일할 때에는 의지가 굳고 강직하여 형세에 굴하지 않았다.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하였다.

○ 다시 왕씨(王氏)를 세워 왕비로 삼으니, 비는 종실 덕풍군(德豊君)의 딸이다.

○ 겨울 12월에 밀직제학(密直提學) 이달충(李達衷)이 파면되었다. 일찍이 이달충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돈을 꾸짖기를,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이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하니 신돈이 불쾌히 여겨 그를 파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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