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전(前) 폐왕(廢王) 우(禑)
  • 임술(壬戌) [전 폐왕 우 8년]

임술(壬戌) [전 폐왕 우 8년]

【명 태조 홍무 15년 ○ 일황 후귀산 10년 ○ 서력 기원 1382년】이었다.

봄 2월에 우(禑)가 남쪽 교외에 사냥을 나갔는데 최영(崔瑩)이 울면서 간하기를, “충혜왕(忠惠王)은 여색을 좋아하였으나 반드시 밤에 하였고, 충숙왕(忠肅王)은 돌아다니기를 좋아했으나 모두 때를 잃지 않아 백성의 원망이 없었습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유희에 법도가 없어서 말에서 떨어져 몸을 상하셨습니다. 신이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이를 바로잡지 못하니 무슨 면목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으나, 우는 뉘우치지 않았다.

○ 왜구가 죽령(竹嶺)【지금의 풍기(豊基)와 단양(丹陽) 지역에 있다.】을 넘어서 단양을 노략질하자 원수 변안렬(邊安烈)이 한방언(韓方彦)과 함께 싸워 대파하였다.

○ 가을 9월에 우가 한양(漢陽)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에 앞서 서운관(書雲觀)에서 말하기를, “변괴(變怪)가 자주 보이니 청컨대 도읍을 옮겨 재난을 피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최영이 또 말하니, 이에 도읍을 옮기고 시중(侍中) 이자송(李子松)으로 하여금 개경(開京)에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

○ 조준(趙浚)을 경상도 체복사(慶尙道體覆使)에 임명하였다. 당시 왜구가 영남(嶺南) 지방에 가득 있어 백성이 모두 도망가 숨었다. 최영이 조준을 천거하니 조준이 그곳에 이르러 도순문사(都巡問使) 이거인(李居仁)이 왜구를 경시한 죄를 꾸짖고, 병마사(兵馬使) 유익환(兪益桓)의 목을 베었다. 여러 장수가 두려워 떨다가 힘을 다해 싸우니, 경상도 전체가 믿고 안심하였다. 조준은 재상 조인규(趙仁規)의 후손으로 큰 뜻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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