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전(前) 폐왕(廢王) 우(禑)
  • 갑자(甲子) [전 폐왕 우 10년]

갑자(甲子) [전 폐왕 우 10년]

【명 태조 홍무 17년 ○ 일황 후소송 2년 ○ 서력 기원 1384년】이었다.

정당문학(政堂文學) 정몽주(鄭夢周)를 명(明)나라에 보냈다. 이때 명나라가 우리 조정과 사이가 벌어져 우리 사신 김유(金庾)와 홍상재(洪尙載) 등을 유배 보내니 사람들이 모두 가기를 꺼리고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바쳐 피하였다. 이에 정몽주를 보낼 때 우(禑)가 직접 불러 면전에서 타이르자 정몽주가 말하기를, “군부(君父)의 명을 감히 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 곧바로 명나라로 갔다. 명나라의 황제를 뵙고 대면하여 설명하는 것이 매우 상세하고 명확하였으므로 명나라 황제가 특별히 우대하고, 드디어 김유와 홍상재 등을 풀어 줘 돌아오게 하였다.

○ 9월에 환관 김실(金實)을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임명하니, 환관을 재상으로 임명한 것은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 이에 앞서 덕종(德宗)이 국자시(國子試)를 시행하였다가 공민왕(恭愍王) 때에 이르러 폐지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다시 성균관(成均館)을 설치하였다. 이때 대언(代言) 윤취(尹就)가 시험을 관장하면서 권세가 있는 집안의 어린아이만을 뽑으니 당시 사람들이 조롱하며 ‘분홍방(粉紅榜)’1)원문에는 홍분방(紅粉榜)으로 되어 있으나, 분홍방(粉紅榜)으로 바로잡는다이라 하였다. 이는 그 아이들이 붉은색 옷을 즐겨 입고, 얼굴에 분을 발랐기 때문이다.

○ 겨울 10월에 북원(北元)【북원은 즉 원나라가 북쪽으로 피해 간 이후이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이 사신을 파견하여 왔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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