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전(前) 폐왕(廢王) 우(禑)
  • 을축(乙丑) [전 폐왕 우 11년]

을축(乙丑) [전 폐왕 우 11년]

【명 태조 홍무 18년 ○ 일황 후소송 3년 ○ 서력 기원 1385년】이었다.

가을 9월에 우리 태조(太祖)께서 왜구[日兵]를 함주(咸州)【지금의 함흥(咸興)】에서 대파하셨다. 이에 앞서 왜구가 단주(端州)와 함주 등을 연이어 노략질하자 원수(元帥) 심덕부(沈德符) 등이 맞서 싸웠으나 모두 패하니 적의 기세가 더욱 강성해졌다. 태조께서 자청하여 공격에 나서 함주에 도착하시니 적이 고둥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만호가 도착하였다.”고 하였다. 태조께서 호군(護軍) 이두란(李豆蘭) 등 1백여 명의 기병을 이끌고 천천히 나아가서 적진에 이르시니 적이 크게 놀라 당황하였다. 태조께서 호상에 걸터앉아 통역으로 하여금 적에게 소리쳐 말하길, “지금 주장(主將)은 이 만호이다. 너희는 빨리 항복하라.”고 하였다. 적의 우두머리가 “그러하겠다.”고 말하고 항복할 것을 의논하다가 정하지 못하자 태조께서 다시 말하시기를, “망설이고 있으므로 공격할 것이다.”고 하시고 먼저 병사를 매복시키고 이두란 등으로 하여금 적을 유인하게 하였다. 태조께서는 홀로 말을 타고 돌진하여 적을 많이 죽였다. 매복병이 또 일어나 함성을 지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에 적의 무리가 크게 무너져 시체가 냇물을 뒤덮었으며 한 사람도 빠져 나가지 못했다.

○ 겨울 12월에 이인임(李仁任)의 여종 봉가이(鳳加伊)를 봉하여 숙녕옹주(肅寧翁主)로 삼고 기생 칠점선(七點仙)을 영선옹주(寧善翁主)에 봉하였다가 후에 다시 봉가이를 봉하여 덕비(德妃)로 삼았다. 또 기생 소매향(少梅香)과 연쌍비(鷰雙飛)를 봉하여 모두 옹주로 삼고, 매번 놀러 나갈 때마다 항상 말을 달려서 방문하였다. 이에 앞서 이인임의 여종의 사위 조영길(趙英吉)이 딸이 있었는데 봉가이라고 불렀다. 우(禑)가 이인임의 집에 갔다가 총애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그 집에 날마다 가서 이인임을 ‘아버지’라 부르고, 이인임의 처 박씨(朴氏)를 ‘어머니’라 부르니 이인임의 권세가 더욱 강성해졌다.

○ 이색(李穡)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임명하고 사부(師傅)의 예로 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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