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보통교과 동국역사(2권)
  • 동국역사 권5(고려기(高麗紀))
  • 후(後) 폐왕(廢王) 창(昌)
  • 기사(己巳) [후 폐왕 창 원년]

기사(己巳) [후 폐왕 창 원년]

【명 태조 홍무 22년 ○ 일황 후소송 7년 ○ 서력 기원 1389년】이었다.

봄 2월에 경상도 원수(慶尙道元帥) 박위(朴葳)가 일본(日本) 쓰시마 섬[對馬島]을 공격하여 물리쳤다. 박위가 일본을 쳐서 전공(戰功)을 여러 번 세웠는데 이때에 이르러 전함 1백 척을 거느리고 쓰시마 섬에 이르러 일본 전함 3백 척과 바닷가의 집을 거의 모두 불태웠다.

○ 가을 7월에 이색(李穡)을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에 임명하고, 이임(李琳)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임명하였다. 또한 정몽주(鄭夢周)의 말에 따라 이색과 이임, 그리고 우리 태조(太祖)에게 명하여 칼을 차고 신을 신고서 전에 오르며, 왕을 뵙고 절을 할 때 이름을 부르지 않도록 하였다. 이임은 창(昌)의 외할아버지였다.

○ 8월에 유구국(琉球國, 현재의 오키나와)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자 창이 전객령(典客令) 김윤후(金允厚)로 하여금 보빙하게 하였다.

○ 창을 폐위하고 정창부원군(定昌府院君) 요(瑤)를 왕으로 세웠다. 이때 최영(崔瑩)의 조카인 전 호군(護軍) 김저(金佇)가 여흥(驪興)에 몰래 들어가서 우(禑)를 만났다. 우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어찌 우울하게 여기에 머물 수 있겠는가! 다만 역사(力士) 한 명을 구해 이성계[李侍中]를 제거하면 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칼 한 자루를 주면서 신뢰하던 판서(判書) 곽충보(郭忠輔)에게 일을 도모하라고 하였다. 곽충보가 우리 태조께 와서 알리자 김저를 국문하였다. 태조께서 정몽주, 조준(趙浚), 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의논하기를, 우와 창이 모두 왕씨(王氏)가 아니어서 종사(宗祀)를 받들기 어려우니, 마땅히 가짜 왕을 폐하고 진짜를 세우자고 하셨다. 드디어 정비(定妃)에게 아뢰어 창을 강화(江華)로 추방하고 신종(神宗)의 7세손 요를 맞이하여 왕으로 세우니 당시 나이가 45세였다. 왕이 즉위하자 우와 창을 강등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이임과 그의 아들 이귀생(李貴生) 등을 유배 보냈다. 이색을 판문하부사에, 변안열(邊安烈)을 진삼사사(鎭三司事)에, 심덕부(沈德符)를 문하시중에, 우리 태조를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정도전을 삼사사(三司使)에 임명하였다. 왕의 사람됨이 혼미하고 유약하여 즉위하던 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오직 울면서 탄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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