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에 힘을 기울여 왕이 즉위한 지 27년(9)에 마한(馬韓)을 멸하였다.
그 후 다루왕(多婁王)과 기루왕(己婁王)을 거쳐 개루왕(盖婁王)에 이르러서는 음란한 음악이 심하고 나라의 굶주린 백성들이 고구려(高句麗)로 흘러 들어갔다. 또한 말갈(靺鞨)과 낙랑(樂浪)이 침략하여 나라의 형세가 위태로웠고 고구려는 다시 강성해져 이웃 네 나라를 병탄할 기세에 있었다.
이때에 삼국은 모두 창업한 나라였는데 각기 영토를 개척하고자 서로 싸우다가 결국 피폐에 이르렀다. 오직 백제(百濟)만이 다루왕 때에 신라(新羅) 변경을 여러 번 침범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