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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高麗) 태조(太祖)의 창업과 성종(成宗)의 정치
  • 훈요(訓要)

훈요(訓要)

또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에게 ‘훈요(訓要) 10편’을 내렸다. 글 중에 이르기를 나라를 있게 한 것이 부처의 힘이라 하여 불사(佛事)를 말하는 것이 더욱 많았다. 그런 연유로 후대 여러 왕의 불교 숭배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왕의 기개와 도량이 크고도 넓고, 너그럽고도 두터워 세상을 구제하는 국량(局量)이 있었으니, 500년의 기업(基業)을 열게 된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아들 혜종(惠宗)은 대광 왕규(王規)가 무고하여 왕의 두 아우 왕요(王堯)와 왕소(王昭)가 역모를 꾀한다 하였으나 왕이 동생들의 억울함을 알고 더욱 돈독하게 대우하였다. 왕규가 또 왕을 시해하고자 하니 왕이 몰래 거처를 옮겨 화를 면하였으나, 이로부터 의심하고 꺼리는 마음이 많아 안팎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였다.

정종(定宗)은 일찍이 내란을 평정하여 종묘와 사직이 흔들리지 않았다. 광종(光宗)은 연호를 세워 광덕(光德)이라 하였다. 초기의 정치에 볼만한 것이 있었으니, 과거를 실시하여 후대인이 경쟁하여 발전하는 기풍을 열었다. 그러나 점차 사치를 행하였고, 말년에는 참언(讒言)을 믿어 훈신(勳臣)과 숙장(宿將, 공로가 많은 장수)을 죽여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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