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종(穆宗)이 강조(康兆)에게 시해당한 후인 현종(顯宗) 원년(1010), 즉 지금으로부터 896년 전1)원문에는 897년 전으로 되어 있으나, 896년 전으로 바로잡는다.에 거란[契丹] 왕 성종(聖宗)이 보병과 기병 40만을 이끌고 칭하여 이르기를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하였다. 강조의 죄를 묻는다 하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흥화진(興化鎭)【평안도 의주(義州) 속현(屬縣)】을 포위하였다. 현종이 강조와 안소광(安紹光)에게 방어하게 하였다. 강조가 통주(通州)【평안도 선천(宣川)】에 출병했다가 거란 군사[丹兵]에게 피살되었다. 거란 군사가 서경(西京)으로 진격하자 왕이 중랑장(中郞將) 지채문(智蔡文)을 보내 도우라 하였다.
지채문이 서경에 이르러 항복하는 자를 죽이고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다가 달아나 되돌아가서 서경의 패배 소식을 왕에게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