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왕은 유약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놀기를 일삼아 정사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온갖 방법으로 벼슬을 얻으려는 풍조가 생겨나 뇌물이 공공연히 성행하며 환관이 임금의 권력을 휘둘러 조정의 혼란이 의종(毅宗) 때보다 더욱 심하였다. 또 무신의 뜻을 따라 상장군(上將軍) 최세보(崔世輔)를 국사(國史)를 수찬하는 데 참여하게 하여 왕을 시해한 죄를 은폐하였다. 또 이의민(李義旼)이 난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막중한 권한을 주니, 이의민이 더욱 탐욕이 많아지고 포학해졌으며 그 자식들도 제멋대로 굴며 난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