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동국사략 상
  • 동국사략 권2
  • 중고사(中古史)
  • 최씨(崔氏)의 전권(專權)
  • 도방(都房)

도방(都房)

최충헌(崔忠獻)이 이미 원망하는 가문이 많아 변란이 있을까 두려워 문사와 무사, 군졸 중에서 용맹하고 힘 있는 자들을 뽑아 자신의 집에 숙직하게 하였는데, 이르기를 도방이라 하였다. 그가 출입할 때에는 당번이 호위하는 것이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았다. 정권을 모두 잡고 뇌물을 받고 관작을 사고 파니, 당시의 명사 금의(琴儀), 이규보(李奎報), 이공로(李公老), 최자(崔滋) 등이 모두 순순히 따랐다.

신종(神宗)이 죽고 아들 희종(熙宗)이 즉위하자 최충헌에게 수태사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守太師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를 제수하니 왕을 옹립한 공에 상을 내린 것이다. 신하의 예로 대하지 않고 은문상국(恩門相國)이라 하고 진강후(晋康侯)로 봉하였다. 최충헌이 책봉사와 신하들을 불러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열 때 유막(帷幕), 화과(花果), 성기(聲伎)의 성대함이 삼한(三韓) 이래 신하의 집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왕이 최충헌 덕분에 즉위하였으므로 그의 제어를 받아 헛된 지위를 지킬 뿐이었으니, 겉으로는 예우가 심히 무거웠으나 실제로는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내시 왕준명(王濬明) 등이 왕을 위하여 승병(僧兵)을 일으켜 최충헌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하였다. 최충헌이 왕을 원망하여 강화(江華)【경기도】로 폐위하여 축출하고 태자는 인천(仁川)【경기도】으로 추방하였다. 명종(明宗)의 아들 왕정(王貞)을 세우니 이 사람이 강종(康宗)이다. 오래지 않아 강종이 죽었으므로 최충헌이 고종(高宗)을 세웠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