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우왕(禑王)을 강화(江華)로 추방하였다.
이에 태조(太祖)께서 조민수(曺敏修)1)원문에는 조민수(曹敏修)로 되어 있으나, 조민수(曺敏修)로 바로잡는다.와 의논하여 왕씨(王氏) 후손을 세우고자 하셨다. 조민수가 이인임(李仁任)이 천거 발탁한 은혜를 생각하여 판삼사사(判三司事) 이색(李穡)과 도모하여 우왕의 아들 창(昌)을 세웠다. 창왕은 이인임의 친족, 즉 이씨(李氏) 출신이었다. 창왕이 즉위 후에 간관(諫官)이 상소하여 조민수를 유배하고 이인임의 자손을 금고(禁錮)하고 최영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