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개화기 및 대한제국기
  • 동국사략 상
  • 동국사략 권2
  • 중고사(中古史)
  • 왜구(倭寇)
  • 정몽주를 일본에 보내다

정몽주를 일본에 보내다

왕이 조사민(趙思敏), 목충(睦忠) 등 여러 장수를 보내 방어하게 하였으나 그 피해가 날로 심해졌다. 또 강화도[江都]를 약탈하니 개경[京城]이 크게 흔들렸다. 최영(崔瑩)과 우리 태조(太祖)께서 여러 번 싸워 격파하셨으나 그 우환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대사성(大司成) 정몽주(鄭夢周)를 일본(日本)에 보내 화친에 성공하여 해적을 금하라 하였다. 정몽주가 지극하게 교린(交隣)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설명하니 진서탐제(鎭西探題)【관명】 이마가와 사다요[今川貞世]가 정몽주를 후대하고 포로들을 송환하였다. 승려 신홍(信弘)을 보내 적을 잡았으나 제어할 힘이 없었다.

그러나 일본이 당시에 침략한 곳은 오직 서남쪽 변경이고 동북 변경은 피해를 당한 곳이 적었다. 이에 동강(東江)【경기도 풍덕(豊德)】, 서강(西江)에 진을 두어 군영을 설치하니 서로(西路)의 방어가 점차 밀집되었다. 왜적이 다시 강릉(江陵), 홍천(洪川), 회양(淮陽)【모두 강원도】 변경에서 마구 날뛰다가, 또 함주(咸州), 홍원(洪原), 북청(北靑)【모두 함경도】으로 나아가 도륙하였으나 여러 장수가 모두 패하였다. 이때에 왜적의 우환이 날로 심해지나 조정은 방책이 없었다. 오직 온 나라의 불교 사찰에서 나라의 병란을 진압하기 위한 법회를 열었을 뿐이었다. 우리 태조께서 왜구를 대파하신 후에야 적의 기세가 점차 쇠약해졌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