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기르는 것[牧馬]은 군사에 긴요한 일이어서 여러 목장을 용양(龍驤), 용서(隴西) 이하 10여 곳에 두었다. 의종(毅宗)은 축마요식(畜馬料式)을 정하여 말 기르는 일에 힘썼다. 후에 말을 여러 섬에 방목하였는데 탐라(耽羅)에서 더욱 번식하였다.
원(元)나라가 고려(高麗)를 압제할 때에는 탐라는 원나라에 속하였고, 또 국가에 변고가 많아 말이 부족하였다. 충렬왕(忠烈王)이 마축자장별감(馬畜滋長別監)을 설치하였으나 그 번식이 아주 충분한 것은 아니어서 그 후로는 관리와 승려들에게 전마(戰馬)를 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