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사람을 등용함이 위의 글과 같으나, 그 취하는 바는 모두 사대부의 자제들이었다. 신분이 미천한 자는 참여하지 못하고 또 관직에 제한이 있었다. 전리(電吏), 장수(杖首), 문복(門僕) 등의 자손으로 제술업(製述業), 명경업(明經業)에 오른 자는 5품으로 제한하고, 의학(醫學), 점술학[卜學], 지리(地理), 산술(算術)의 업은 7품으로 제한하였다. 혹 대소 공친(大小功親)과 혼인하여 낳은 자손과 장인과 상인, 악인(樂人)의 자손은 공이 있다 하여도 물건만 하사하고 벼슬길은 금하였다. 그 제도가 때에 따라 같지 않으나 한미한 자는 영달의 길이 막혀 있었다.
고려(高麗) 500년의 제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초기에는 당(唐)나라 제도를 모방한 것이 열에 일곱 여덟이고, 충렬왕(忠烈王) 이후는 혹 원(元)나라의 제도에 의거한 것이 있었다. 그 사이에 이해득실이 없지 않았으나, 고려가 당나라 제도를 모방한 것은 대체로 옛 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