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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

가옥은 태조(太祖) 때 도선(道詵)의 비기(秘記)에 이르기를, “산이 적은 땅에는 높은 누각을 세우고 산이 많은 땅에는 단층집을 지어야 한다. 만일 높은 집을 세우면 쇠퇴와 손실을 부른다.”고 하였으니, 이 설에 근거하여 궁궐과 민가 모두 높게 지은 집을 금하였다. 성종(成宗) 때에는 제한이 없어 재력 있는 자는 대옥(大屋)을 짓고 충렬왕(忠烈王) 때는 3층 각을 만들었다. 충혜왕(忠惠王) 때에는 신청(申靑)이라는 사람이 큰 누각을 세워 벽에는 금화(金畫)를, 기둥에는 주휴(朱髹)를 썼다. 대체로 정원에는 벽돌을 깔고 마루에는 자리를 깔아 오를 때에 신발을 벗는 것을 예의라 하였다.

서민의 가옥은 초가집이었으니 기와를 얹은 것은 열에 두세 집이었다. 또 벚나무 껍질을 쓴 집도 있었다. 충선왕(忠宣王) 때에는 부유한 사람이 선의문(宣義門) 안에 기와집을 짓고 또 5부의 민가가 모두 기와를 쓰니, 기와집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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