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戊午士禍) 이후 몇 년 뒤에 또 갑자사화가 있었다. 처음에 연산군(燕山君)의 어머니 윤씨(尹氏)【성종(成宗)의 비】가 교만 방자하고 투기하여 불손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성종께서 사사하셨다. 연산군이 생모가 비명에 죽은 것을 한스러워하여 연산군 10년(1504)【갑자】에 생모를 추숭하여 왕후라 하였다. 또 당시 생모가 폐비되어 죽을 때 논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죄를 주어 윤필상(尹弼商), 이극균(李克均), 성준(成浚), 이세좌(李世佐), 권주(權柱), 김굉필(金宏弼), 이주(李冑) 등 수십 명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