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김명윤(金明胤)의 밀계(密啓)로 인하여 계림군(桂林君)과 봉성군(鳳城君)을 죽였다. 또 이덕응(李德應)을 국문하여 이휘(李輝), 나숙(羅淑)을 무고하였다. 이로부터 없는 죄를 만들고 모함하는 일이 더욱 심하여 일시에 명사가 주륙되거나 유배되었다. 이렇게 해를 입은 사람이 을사(乙巳)【인종(仁宗) 원년】부터 정미(丁未)【명종(明宗) 2년】까지 거의 1백 명이었다.【권발(權撥), 이언적(李彦迪), 백인걸(白仁傑), 정희등(鄭希登), 박광우(朴光佑), 김저(金䃴), 송희규(宋希奎), 유희춘(柳希春), 김난상(金鸞祥), 이언침(李彦忱), 민기문(閔起文), 곽순(郭恂), 이림(李霖), 이휘(李輝), 정욱(鄭郁), 이중열(李中悅), 나식(羅湜), 나숙(羅淑), 노수신(盧守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