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成宗) 22년(1491)에는 야인(野人)이 영안도(永安道)를 침략하여 진장(鎭將)을 죽이자, 관찰사(觀察使) 허종(許琮)에게 2만 군사를 거느리고 토벌하게 하여 대파하였다. 왕이 또 국방에 뜻을 두어 여러 도(道)에 성을 쌓고 군사를 대대적으로 점검하니 세종(世宗), 세조(世祖)가 남긴 모범이 있었다.
중종(中宗), 명종(明宗) 때에 이르러서는 야인이 변경에 출몰하였으나 모두 곧바로 군대를 보내 쫓아냈다. 그러나 만포 첨사(滿浦僉使) 심사손(沈思遜)이 야인을 죽일 때에는 출동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