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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의 난

중종(中宗) 5년(1510) 경오(庚午), 지금으로부터 396년 전, 쓰시마[對馬] 도주 소 요시모리[宗義盛]가 조선(朝鮮)에서 자기가 보낸 사신을 받지 않자 노하여, 소 모리히로[宗盛弘]에게 군사 3백 명을 거느리고 삼포에 거류하는 일본인(日本人)들과 합세하여 부산(釜山)과 제포(薺浦)를 침략하게 하였다. 이어 부산 첨사(釜山僉使) 이우증(李友曾)을 죽이고, 제포 첨사(薺浦僉使) 김세균(金世均)을 붙잡고, 웅천(熊川), 동래(東萊)를 포위하여 웅천성을 함락하였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조정이 크게 놀라 안윤덕(安潤德)에게 도체찰사(都體察使)를 제수하고 황형(黃衡), 유담년(柳聃年)에게 방어사(防禦使)를 제수하여 토벌 평정하였다. 이것을 삼포의 난 또는 경오(庚午)의 변이라 한다. 이로부터 쓰시마와의 교류가 끊어졌다.

중종 7년(1512)에 다시 쓰시마 섬과 화친하였다. 대신 쓰시마 섬에 보내던 원래의 세견선 50척을 줄여 25척이 되었다. 삼포에 거류민을 없애고 부산에만 왜관을 지어 사신 접대소로 삼았다. 그러나 중종 말에는 서남 연해안 침략이 매우 심하여 웅천 앞바다에 가덕진(加德鎭), 천성진(天城鎭) 등을 설치하였다. 이때에 쓰시마 사람이 사량(蛇梁)【경상도】을 침입하여 교류가 끊어졌다가 명종(明宗) 2년(1547)에 다시 조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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