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조정이 일본(日本)이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방어책을 의논하였다. 김수(金晬), 이광(李光), 윤선각(尹先覺)에게 경상 감사(慶尙監司), 전라 감사(全羅監司), 충청 감사(忠淸監司)를 각각 제수하고, 이순신(李舜臣)【정읍 현감(井邑縣監)】에게는 좌의정(左議政)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를 제수하여 무기를 갖추고 성과 해자를 고치게 하였다. 또 신립(申砬)과 이일(李鎰)은 당시 무장 중에 두터운 명예가 있는 사람이므로, 각지에 나누어 보내 변방의 방비 태세를 순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온 나라가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에 익숙해져 있었고, 백성은 노역을 꺼려 원성이 길을 덮고 군읍은 대부분 그럴 듯한 핑계로 죄를 피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