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전라 순찰사(全羅巡察使) 이광(李洸)과 방어사(防禦使) 곽영(郭嶸)과 경상 순찰사(慶尙巡察使) 김수(金晬)와 충청 순찰사(忠淸巡察使) 윤국형(尹國馨) 등의 군사가 8만이었다. 용인(龍仁) 광교산(光敎山)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을 때 적병이 갑작스럽게 공격해왔다. 충청 군사가 먼저 무너지고 나머지 무리도 이어서 무너져서 이광 등이 전라도로 되돌아갔다.
이순신(李舜臣)이 본영으로부터 진군하여 당포(唐浦)에 이르렀는데 적장 한 명이 큰 전함을 타고 오자 통전(筒箭)으로 쏘아 죽이고 드디어 대파하였다. 이윽고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수군장[舟師]으로서 내회(來會)하여 적을 당항(唐項)과 영등포(永登浦) 등지에서 공격하여 모두 크게 이겼다. 이로부터 조선군의 명성이 크게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