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에 적이 대규모 수군[舟師]을 보내 호남으로 향하였다. 이순신(李舜臣)이 이억기(李億祺)와 함께 고성(固城) 앞바다로 나가다가 견내량(見乃梁)에서 적을 만났다. 바다가 얕고 좁아 전술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큰 바다로 유인하고자 하였다. 이순신이 여러 장수에게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게 하니 과연 적이 승세를 타고 추격해 와 한산도(閑山島) 앞바다에 이르렀다. 이순신이 군사를 돌이켜 적선 70여 척을 무찔러 죽이니 피비린내가 바다에 넘쳐났다. 또 적의 구원병을 안골포(安骨浦)에서 부수어 그 배 40척을 불태우니, 이 날 죽은 적병이 9천 명이었다.
이에 적이 패한 무리를 거느리고 금산(錦山)으로 퇴각하므로 초토사(招討使) 고경명(高敬命)이 군사 7천과 방어사(防禦使) 곽영(郭嶸)과 함께 가서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하고 모두 적에게 죽었다.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도 또한 싸우다가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