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劉綎), 교일기(喬一琦), 김응하(金應河)【선천 군수(宣川郡守)】, 오직(吳稷)【오른쪽 선봉】 등은 전사하고 강홍립(姜弘立)과 김경서(金景瑞)는 만주(滿洲)에 항복하였다. 무릇 이 일은 강홍립이 출발할 때에 광해군(光海君)의 밀지로 형세를 보고 향배를 정한 때문이었다.
또 만주에서는 투항한 장수를 여러 차례 우리에게 보내 화친을 청하였다. 이 때문에 명(明)나라에서는 조선이 만주와 사통한다 의심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변명하였다. 또 만주와는 완전히 강화한 것은 아니었으나, 혹 분노를 살까 두려워 심양(瀋陽)과 요양(遼陽)을 함락할 때에도 명나라를 돕지 않았다. 오직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한 정책으로 명나라와 만주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